2026. 9. 27. 20:30ㆍ그냥 한 번 끄적거려볼까 해서
14화
사랑은 책임이 아니니까
준혁은 어머니 집에 들렀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요즘 왜 이렇게 자주 와?”
“그냥요.”
“회사 힘들어?”
“아니요.”
어머니가 웃었다.
“너는 어릴 때부터 힘들다는 말을 안 하더라.”
준혁은 물컵을 만졌다.
“엄마.”
“응.”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뭘 해줘야 해요?”
어머니가 설거지를 멈췄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궁금해서.”
“좋아하면 잘해줘야지.”
“그게 어디까지예요?”
어머니가 물기를 닦으며 말했다.
“그 사람 인생까지 책임지는 건 아니지.”
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
“좋아한다고 해서 네가 그 사람 문제를 전부 해결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는 식탁에 앉았다.
“같이 고민할 수는 있어도.”
“…”
“그 사람 대신 살아줄 수는 없잖아.”
준혁은 그 말을 듣고 오래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
어머니는 혼자 가족을 꾸려야 했다.
준혁은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고,
힘든 일이 생기면 먼저 해결해주는 것이며,
상대가 자신 때문에 아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 때문에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것.
상대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
“준혁아.”
어머니가 불렀다.
“응.”
“누구 좋아하니?”
준혁이 웃었다.
“티 나요?”
“엄마한테는 다 나.”
그날 밤 준혁은 집에 돌아와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그동안 쓰고 지웠던 문장들을 다시 읽었다.
좋아해요.
미안해요.
보고 싶어요.
그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지우지 않고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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