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27. 10:26ㆍ그냥 한 번 끄적거려볼까 해서
13화
좋은 사람
도현은 서연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
그는 고백한 뒤에도 평소와 똑같았다.
촬영이 끝나면 사진을 보내줬고,
출판사에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먼저 정리해줬다.
어느 날 서연이 말했다.
“도현 씨.”
“네.”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뭐가요?”
“제가 대답을 안 했는데.”
도현이 웃었다.
“대답을 안 했다는 건 거절했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기다리겠다는 말도 안 할게요.”
서연이 그를 바라봤다.
“그건 또 왜요?”
“기다린다고 하면 서연 씨가 미안해할 것 같아서.”
도현은 카메라 가방을 정리했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으로 있을게요.”
그 말이 서연에게는 오히려 편했다.
도현은 서연에게 사진집 작업을 제안했다.
자신이 몇 년 동안 찍은 동네 사진들을 모아 작은 사진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곳을 찍었어요.”
사진에는 특별할 것 없는 풍경들이 있었다.
오래된 세탁소.
새벽 시장.
닫은 문 앞에 놓인 화분.
학교가 끝난 뒤 비어 있는 놀이터.
“왜 이런 걸 찍었어요?”
서연이 물었다.
도현이 말했다.
“없어지기 전에 기억하고 싶어서요.”
서연은 사진을 한 장 넘겼다.
“사람도 그래요?”
“네.”
“사람도 없어지기 전에 기억해요?”
도현이 잠깐 생각했다.
“사람은 없어져도 기억에 남잖아요.”
그날 서연은 처음으로 도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왜 애매한 관계를 견디기 힘든지.
왜 누군가가 마음을 말하지 않는 것을 무서워하는지.
대학 시절 사귀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서연에게 말했다.
“우리 그냥 친한 사이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는 서연을 여자친구라고 말했다.
서연이 따져 묻자 그는 웃었다.
“그냥 상황에 따라 그런 거지.”
그때 서연은 처음 알았다.
좋아하는 마음보다 더 아픈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일 수 있다는 걸.
그 뒤로 서연은 관계를 시작할 때마다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무슨 사이야?
나 좋아해?
계속 만날 거야?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도현은 끝까지 듣고 말했다.
“그래서 준혁 씨가 아무 말도 안 했을 때 힘들었던 거예요?”
서연은 고개를 숙였다.
“…네.”
도현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은 서연 씨가 왜 힘든지도 몰랐겠네요.”
그 말에 서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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