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prologue)

2026. 9. 21. 13:13ㆍ그냥 한 번 끄적거려볼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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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던 날

비가 그렇게 많이 내린 날은 아니었다.

 

우산이 없어도 건물 처마 아래에서 조금 기다리면 금방 그칠 것 같은 비였다.

 

문제는 서연이 그날따라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학생들이 하나둘 우산을 펼쳐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서연은 가방을 머리 위에 올려놓은 채 처마 아래에 서 있었다.

 

“아… 진짜.”

 

아침에는 분명 맑았다.

 

비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우산을 챙겼을 텐데.

 

서연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친구에게 전화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누구에게 부탁해서 우산을 가져오게 하기에는 애매한 비였다.

 

그때 옆에서 검은 우산 하나가 펼쳐졌다.

 

“같이 쓰실래요?”

 

서연이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검은 머리카락이 비에 젖은 듯 조금 눌려 있었고, 한 손에는 책 몇 권이 들려 있었다.

 

“저요?”

 

“네.”

 

“괜찮아요.”

 

서연은 본능적으로 사양했다.

 

“저 조금 기다렸다가 가려고요.”

 

남자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금방 그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 말이 맞았다.

 

빗줄기는 오히려 조금 굵어지고 있었다.

 

서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우산 안으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생겼다.

 

우산은 생각보다 작았다.

 

서연이 최대한 가장자리로 붙자 남자가 우산을 서연 쪽으로 기울였다.

 

“그쪽으로 가면 어깨 젖어요.”

 

“아…”

 

서연이 안쪽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두 사람의 어깨가 거의 닿았다.

 

그때 서연은 남자의 운동화가 이미 젖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 때문에 비 맞으시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 너무 쉽게 하시는데.”

 

남자가 처음으로 웃었다.

 

“그런가요?”

 

“네.”

 

서연도 웃었다.

 

그렇게 둘은 도서관에서 학생회관까지 걸었다.

 

학생회관 앞에 도착하자 서연이 우산 밖으로 나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저…”

 

서연은 뒤늦게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남자가 잠깐 멈췄다.

 

“서준혁이요.”

 

“저는 한서연이에요.”

 

“네.”

 

“다음에 만나면 우산 돌려드릴게요.”

 

준혁이 웃었다.

 

“그러세요.”

 

서연은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준혁은 이미 반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검은 우산 하나.

 

젖은 운동화.

 

그리고 이름 하나.

 

서연은 그날 이후 오랫동안 그 장면을 기억했다.

 

그때는 몰랐다.

 

사람의 인생에 들어오는 인연이 언제나 특별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어떤 사람은

 

그저 비 오는 날 우산 하나를 내밀고 지나간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그날의 우산이 생각보다 오래 내 인생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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