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22. 08:11ㆍ그냥 한 번 끄적거려볼까 해서
1부
좋아한다고 말해요
1화
다시 만난 사람
십 년이 넘은 뒤에도 비는 비슷하게 내렸다.
준혁은 전시장 입구에서 유리문 너머를 바라봤다.
오전부터 내린 비 때문에 바닥에는 사람들의 젖은 발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전시는 다음 주 개막이었다.
아직 손볼 곳이 많았다.
조명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작품 설명문의 위치도 바꿔야 했다. 오후에는 출판사 쪽 담당자와 미팅까지 잡혀 있었다.
“준혁 씨.”
뒤에서 직원이 불렀다.
“네.”
“출판사에서 담당자 오셨어요.”
“지금요?”
“네.”
준혁은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보다 십 분 빨랐다.
“어디 계세요?”
“회의실에요.”
준혁은 서류를 정리하고 회의실로 향했다.
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조금…”
말이 끊겼다.
테이블 건너편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긴 머리카락.
익숙한 눈매.
그리고 그가 한동안 잊었다고 생각했던 얼굴.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서연이었다.
“준혁 씨?”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비.
검은 우산.
학생회관 앞.
그리고 한서연.
준혁은 의자 옆에 손을 얹은 채 잠깐 서 있었다.
“서연 씨…”
“맞죠?”
“네.”
서연이 웃었다.
“진짜 오랜만이에요.”
준혁은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그러네요.”
“저 기억나요?”
“기억하죠.”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준혁은 이상하게도 그날의 일을 최근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서연은 가방에서 자료를 꺼냈다.
“이번 전시 관련해서 저희 출판사에서 도록 제작을 맡게 됐어요.”
“네.”
업무 이야기가 시작됐다.
준혁은 최대한 평소처럼 행동했다.
페이지를 넘기고,
일정을 확인하고,
수정할 부분을 표시했다.
그런데 서연이 펜을 잡는 손을 볼 때마다 자꾸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회의가 끝난 뒤 서연이 먼저 일어났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올게요.”
“네.”
“준혁 씨.”
“네.”
“혹시…”
서연이 웃었다.
“저랑 처음 만났던 날 기억나요?”
준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비 왔던 날?”
“역시 기억하네요.”
“잊을 수가 없죠.”
서연이 웃었다.
“저는 그날 이후로 우산 잘 챙겼어요.”
“정말요?”
“아뇨.”
준혁이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두 사람이 함께 웃었다.
그 순간 준혁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과 다시 만난 것 같은 이상한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도 있었다.
그날 이후로 자신은 자꾸 서연을 바라보게 됐다.
회의 중에는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게 됐고,
점심시간에는 무엇을 먹는지 궁금했고,
퇴근할 때는 어디로 가는지 생각했다.
준혁은 그 감정을 이름 붙이지 않았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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