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 1. 09:41ㆍ그냥 한 번 끄적거려볼까 해서
3부
사랑에 빠졌다 말해요
21화
몇 년 뒤
삼 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빨리 변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하루가 지나가는 데만도 오래 걸렸다.
1년째 봄
부산으로 내려간 서연은 작은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사무실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가 좋았고,
퇴근길 골목의 작은 책방들이 좋았다.
그런데 밤이 되면 서울에서 보던 이름 하나가 자꾸 생각났다.
서준혁.
처음에는 연락을 자주 했다.
오늘 비 와요.
여기는 바람이 많이 불어요.
오늘 회의 진짜 힘들었어요.
준혁도 답했다.
여기는 전시장 공사 때문에 정신없어요.
밥 먹었어요?
감기 조심해요.
그런 대화가 몇 달 동안 이어졌다.
어느 날 서연이 물었다.
우리 지금 뭐예요?
준혁은 메시지를 한참 바라봤다.
답장을 쓰지 못했다.
서연도 그 뒤로 다시 묻지 않았다.
그날부터 연락이 조금씩 줄었다.
2년째 겨울
준혁은 새로운 전시를 맡았다.
지역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그는 바쁘게 일했다.
일이 끝난 뒤에도 사무실에 남아 자료를 정리했다.
어느 날 태경이 물었다.
“서연 씨는?”
“잘 지내겠지.”
“연락 안 해?”
“가끔.”
“왜 가끔인데?”
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서연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그녀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삶에 들어가는 것이 맞는지,
자신이 다시 같은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많아질수록 연락은 줄었다.
서연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에서 작은 출판 공간을 하나 얻었다.
직원이라고 부를 사람도 없었다.
혼자 책을 고르고,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고,
가끔 행사도 열었다.
어느 겨울밤,
서연은 가게 문을 닫고 혼자 남았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준혁이었다.
잘 지내요?
서연은 웃었다.
그리고 답했다.
네. 준혁 씨는요?
그날은 두 사람이 오랜만에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누구도 만나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3년째 가을
서연은 자신의 출판 공간에서 새로운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은 책과 사진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보낸 사람을 확인한 순간 손이 멈췄다.
지역문화재단 전시기획팀 서준혁.
서연은 메일을 열었다.
전시 협업 제안이었다.
몇 년 전 같았으면 반가워서 바로 답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짧게 답했다.
제안 감사합니다.
한번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른 뒤 서연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삼 년이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면,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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