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30)
-
30화 우리 사랑, 그런거 해요
30화우리 사랑, 그런거 해요그날도 비가 왔다. 준혁은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했다. 서연이 멀리서 뛰어왔다. “늦었어요.” “괜찮아요.” “오늘은 우산 있어요.” 서연이 작은 우산을 흔들었다. 준혁이 웃었다. “이제 우산 안 잊어버리네요.” “누구 때문에 생긴 습관인데요.” “누구요?” “몰라요.” 서연이 웃었다. 둘은 우산 아래에 나란히 섰다. 준혁이 우산을 잡았다. 서연이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손을 걸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도 비 왔죠?” “네.” “그때 준혁 씨가 우산 씌워줬고.” “네.” “그리고 지금은 제가 우산 가지고 있고.” “그러네요.” 서연이 말했다. “사람 참 이상하죠.” “왜요?” “그때는 이 사람이 내 인생에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는데.” 준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저도요...
2026.10.05 -
29화 우리도 연습이 필요하니까
29화우리도 연습이 필요하니까사랑한다고 말한 뒤에도 두 사람의 삶은 갑자기 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연락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얼마나 자주 만나야 하는지, 서로에게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어느 날 준혁은 회의가 길어져 연락을 못 했다. 서연은 밤늦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왜 연락 안 했어요?준혁은 집에 돌아와 답했다.미안해요. 회의가 길어졌어요.잠시 뒤 서연이 답했다.알아요.그런데 준혁은 그 두 글자가 마음에 걸렸다. 전화를 걸었다. “왜요?” 서연이 받았다. “서운했죠?” “조금.” “왜 바로 말 안 했어요?” “괜히 또 귀찮게 할까 봐.” 준혁은 웃었다. “그럼 우리 예전으로 돌아간 거네요.” “아니요.” 서연이 웃었다. “이번에는 말했잖아요.” 준혁도 웃었다. “맞네요..
2026.10.05 -
28화 사랑해요
28화사랑해요비가 내렸다. 둘은 작은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걸었다. 준혁이 우산을 서연 쪽으로 기울였다. 서연이 말했다. “준혁 씨.” “네.” “우산 아직도 한쪽으로 기울이네요.” “습관인가 봐요.” “그러다 어깨 젖어요.” “괜찮아요.” 서연이 웃었다. “또 괜찮다고 하네.” 준혁도 웃었다. “그럼 안 괜찮다고 할까요?” “아니요.” 서연이 우산 손잡이를 잡았다. “이번에는 같이 써요.” 준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네.” 둘은 나란히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준혁이 말했다. “서연 씨.” “네.” “사랑해요.” 서연이 웃었다. “나도 사랑해요.” 신호가 바뀌었다.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건넜다. 그뿐이었다. 누구도 떠나지 않았다. 누구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2026.10.04 -
27화 겁이 났어요
27화겁이 났어요고백하고 나서도 둘은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서연이 먼저 말했다. “저 사실 아직 무서워요.” “알아요.” “뭐가 무서운지도 알아요?” “조금.” “준혁 씨가 또 아무 말도 안 할까 봐.” “그럴 일 없어요.” “사람 마음은 모르잖아요.” “맞아요.” 준혁은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말할게요.” 서연이 그를 바라봤다.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서연이 웃었다. “그거 다 하면 힘들지 않아요?” “힘들겠죠.” 준혁도 웃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을 것 같아요.” 서연은 그 말을 듣고 그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먼저 놓지 않았다.
2026.10.04 -
26화 네가 기다렸던 것
26화네가 기다렸던 것전시 마지막 날. 모든 일이 끝난 뒤 사람들이 돌아갔다. 출입문을 닫자 공간이 조용해졌다. 준혁과 서연만 남았다. 준혁이 말했다. “서연 씨.” “네.” “할 말 있어요.” 서연이 웃었다. “이번에는 바로 말해요.” 준혁도 웃었다. “네.” 그는 그녀 앞에 섰다. “저 서연 씨 사랑해요.” 서연의 눈이 조금 커졌다. “좋아한다는 말은 예전에 했으니까.” 준혁이 말했다. “이번에는 더 정확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는 서연 씨를 다시 만나고 나서…” 준혁이 숨을 골랐다. “예전보다 더 많이 생각했어요.” “…”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보다.” 그는 서연의 눈을 바라봤다. “이 사람이 내 옆에 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했어..
2026.10.03 -
25화 좋아했던 게 아니라
25화좋아했던 게 아니라서연은 어느 날 혼자 출판 공간에 남았다.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그녀는 책장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안에는 대학 시절의 사진과 메모들이 있었다. 그중 한 장을 꺼냈다. 젊은 자신이 웃고 있었다. 사진 뒤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비가 왔던 날. 서연은 웃었다. 그때 자신이 왜 그 우산을 그렇게 오래 기억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우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준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기억한 사람. 늦은 밤 집에 갈 때 잘 들어갔는지 물어보던 사람. 말하지 못하면서도 행동으로 마음을 보여주던 사람. 그런 시간이 하나씩 쌓였다. 서연은 그동안 자신이 준혁의 고백만 기다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도 계속 그 ..
2026.10.03 -
24화 이번에는 묻겠습니다
24화이번에는 묻겠습니다어느 저녁 준혁이 물었다. “서연 씨.” “네.” “저랑 있는 거 불편해요?” 서연은 웃었다. “조금.” “왜요?” “좋아했던 사람이니까.” 준혁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가 다시 물었다. “지금도 좋아해요?”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준혁이 말했다.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왜 갑자기 그렇게 물어요?” “예전에는 안 물었잖아요.” “그랬죠.” “이번에는 물어보려고요.” 서연은 그를 바라봤다. “무서워요?” “네.” “뭐가요?” “답이.” 서연은 한참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저도 무서워요.” “뭐가요?” “준혁 씨가 다시 아무 말도 안 할까 봐.” 그 말에 준혁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럴 일 없어요.” “어떻게 믿어요?” “믿어달라고 하기 전에…”..
2026.10.02 -
23화 예전처럼
23화예전처럼두 사람은 전시 준비를 함께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하루를 물었다. 지금은 물어도 될지 먼저 생각했다. 어느 날 늦은 밤까지 일을 하다가 서연이 말했다. “준혁 씨.” “네.” “우리 예전처럼 할까요?” 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뭘요?” “편하게.” 준혁은 잠깐 생각했다. “예전처럼은 안 될 것 같아요.” 서연의 표정이 굳었다. 준혁이 말했다. “우리가 너무 많이 변했잖아요.” 서연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맞아요.” “대신…” 준혁이 말했다. “새로 하면 안 돼요?” “뭘요?” “우리.” 서연은 그를 바라봤다. 준혁은 웃었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 “지금부터 다시 알아가는 거요.”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조금씩 사적인 이야..
2026.10.02 -
22화 다시 만난 사람
22화다시 만난 사람준혁은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도착했다. 서연의 출판 공간은 생각보다 작았다. 하지만 따뜻했다. 벽 한쪽에는 책장이 있었고, 창가에는 오래된 나무 책상이 놓여 있었다. 준혁은 책장 앞에 서서 책 제목을 살펴봤다. “일찍 왔네요.” 뒤에서 서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혁이 돌아봤다. 삼 년 전보다 조금 짧아진 머리. 조금 더 차분해진 표정. 그런데 웃을 때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건 그대로였다. “서연 씨.” “오랜만이에요.” “네.”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어색했다. 너무 오랜만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어색했다. “커피 드릴까요?” “네.” “똑같은 걸로?” 준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기억해요?” 서연이 웃었다. “그 정도는 기억하죠.” 커피를 내려오는 동안..
2026.10.01 -
21화 몇 년 뒤
3부사랑에 빠졌다 말해요21화몇 년 뒤삼 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빨리 변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하루가 지나가는 데만도 오래 걸렸다.1년째 봄부산으로 내려간 서연은 작은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사무실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가 좋았고, 퇴근길 골목의 작은 책방들이 좋았다. 그런데 밤이 되면 서울에서 보던 이름 하나가 자꾸 생각났다. 서준혁. 처음에는 연락을 자주 했다.오늘 비 와요.여기는 바람이 많이 불어요.오늘 회의 진짜 힘들었어요.준혁도 답했다.여기는 전시장 공사 때문에 정신없어요.밥 먹었어요?감기 조심해요.그런 대화가 몇 달 동안 이어졌다. 어느 날 서연이 물었다.우리 지금 뭐예요?준혁은 메시지를 한참 바라봤다. 답장을 쓰지 못했다..
2026.10.01